반응형

 인류애가 떨어질 때마다 곱씹어보는 이야기.

 파리 공항 하면 대표적으로 샤를드골 공항, 오를리 공항을 떠올릴거다. 당시 나는 파리에서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항공편을 찾고 있었고, 도착할 시간대, 금액 등을 고려해 보베 공항(Beauvais–Tillé Airport) out을 선택했다. 엄청나게 잘못된 선택이었다. 보베공항은 여행자가 대부분 묵는 파리 도심에서 찾아가는 것도 오래 걸리고, 어렵고, 돈도 더 든다. 대충 알면서도 시간대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예매했는데 정말 후회막심이었다. 허허벌판에 공항이랍시고 작은 터미널 하나 달랑 있다. 정말 동네 구멍가게 같은 공항이다. 매점같은 가게가 있긴 했는데 500ml 물 한 병에 3천원했나? 면세점? 당연히 없다. 체크인은 빠르긴 했다. 요즘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내가 여행했던 2019년은 그랬다. 물론 한국-파리 라면 대부분 샤를드골이나 오를리로 오겠지만 유럽 내 이동할 때 파리를 가거나 떠날 때 보베공항을 거치려고 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단순히 티켓 값 싸다고 예매하는 건 금물이다. 그냥 가지마라..

보베 공항 내부. 뛰어와서 정신없는 와중에 용케 사진도 찍었다. 

 

보베 공항 버스는 Paris Porte Maillot 정류장에서 타면 된다. Porte Maillot 3번 출구로 나오면 빠름. 근데 보베공항 정말.. 가지마라..

 

보베 공항 버스 탑승장. 저 컨테이너박스로 대충 지어진 허름한 외관부터..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이렇게 악명높은 보베공항으로 가는 공항버스를 탈 때 생긴 일이다.

 당시 6월 중순을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비가 오고 추웠다. 게다가 파리에 있는 일주일 내내 심한 목감기를 앓은 탓에 컨디션은 최악 중 최악이었다. 보베 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정류장에 도착했다. 표는 이미 예매하고 인쇄를 해놓아서 버스만 타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버스는 정류장에 제 시간보다 한참 늦은 시각에 도착했다(보베 공항 걸러야 하는 이유 추가). 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서있는데 하필 내 앞에 있는 아저씨는 줄담배를 피워대서 죽을 맛이었다. 

 드디어 탑승을 하려고 하는데, 내 앞 승객과 버스기사가 뭐라뭐라 실랑이를 하는게 아닌가. 나는 그 실랑이 중에 빨리 탈 요량으로 인쇄해온 표를 스캐너에 찍었다. 이게 문제의 발단이다. 그냥 앞 사람이 뭔 지랄을 하든 기다렸어야 했다. 망할. 앞 사람이 옆으로 비킨 사이에 탑승하려는데 기사가 나를 불러세웠다. 표를 스캔하지 않고 무임승차 하는게 아니냐고 따졌다. 나는 방금 표를 찍었다고 말했고, 다시 표를 찍어보라는 기사의 화난 음성에 표를 다시 스캔했다. 당연히 이미 쓴 표라고 떴다. 그러자 기사는 다 쓴 표로 버스를 타려는 파렴치한 승객으로 나를 몰아갔다. 그 기사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듯 서투른 영어로 언성을 높였다. 계속 No 만 외쳐댔다. 덩치 큰 남자가 고압적으로 소리까지 질러대니 당황스럽기 그지 없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깟 몇 유로짜리 표 다시 끊는다고 하면 될 일이긴 했으나, 심신이 지쳐있는 상태에서 합리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그때 내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커플이 정말 고맙게도 나를 두둔해주었다. 내가 표 찍는 걸 봤다고 거들어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사는 씩씩대며 새로 표를 구해오라 소리쳤다. 이미 버스는 늦게 도착해 얼른 출발해야하는 상황인데다가 내 뒤로 탑승할 승객들이 아주 많았기 때문에, 일단 기사는 버스에 타려는 나를 억지로 잡아 끌어내리지는 않았다. 그 분들이 아니었다면 버스기사의 기세에 눌려 버스 타는 걸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승객들을 다 태우고 기사가 내게 와 내리라고 소리를 지를까봐 가슴이 쿵쾅대고 몸이 덜덜 떨렸다. 그렇게 떨고 있는데, 아까 나를 두둔해줬던 커플 중 여성분이 아마 괜찮을거라고, 기사가 표 새로 끊으라고 계속 난리치면 공항 도착해서 다시 끊으면 된다고 위로해주었다. 정말 감사하다고 말하는데 감기때문에 목소리도 잘 안나왔다. 다행히 버스는 사람들이 다 타자마자 바로 출발했다. 버스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빛의 속도로 캐리어를 들고 공항 입구로 냅다 뛰었다. 그 망할 버스기사놈이 나를 잡아세울까봐!

 두 사람의 친절 덕분에 파리 여행을 어찌저찌 잘 마무리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 아마 저 상황을 혼자 헤쳐나가야 했다면 파리의 여행은 불쾌하게 일단락되었겠지. 사람 마음이 참 이상한게, 새로운 도시를 여행할 때 좋았던 경험이 100가지라도 한 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기면 도시의 이미지가 바닥으로 추락하곤 한다. 천만다행으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나 잘 풀렸다. 그 분들이 이 글을 볼지는 모르겠으나 정말 감사했다고 전하고 싶다. 얼마 없는 인류애를 지켜준 사람들이다. 

 프랑스 여행기도 올리긴 올려야겠는데 또 언제 올릴지 모르겠다. 

한 폭의 그림같던 오베르 쉬르 우아즈. 하루를 꼬박 보냈는데 참 행복했다. 

 

반응형

'trip'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프라하로 (1)  (0) 2019.06.02
D-15 런던으로  (0) 2019.02.25

+ Recent posts